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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루한 일상속에 길이 보이지 않을 때
이삭의 후예는 이러하니라(창 25:19)
이삭은 창세기 17장 19절에서 처음 등장하여 창세기 35장에서 죽음으로 퇴장한다. 그는 창세기에서 긴 본문에 걸쳐 등장하고 있음에도 거의 눈에 띄지 않는 사람이다. 일일 연속극에도 나오고 주말연속극에도 나오고 영화에도 나오고 지하철을 타고다니지만 누구도 알아보지 못하는 웹툰 가우스 전자에 나오는 나무명 씨 같은 인물이다. 그는 아브라함에게 하나님이 주신 약속의 아들로 태어났다. 야곱의 아버지로 생을 마감했다. 그러나 그의 인생 자체는 특별한 사건도 없었고, 큰 공을 세운 것도 아니며, 드라마틱한 이야기가 있지도 않다. 아브라함 이야기에서는 아브라함의 조연으로, 야곱 이야기에서는 야곱의 조연으로 충실할 뿐이다.
아버지의 칼에 살해 당할 뻔 하기도 하고, 신비로운 경험을 통해 아내를 얻기도 하고, 그렇게 소중하게 얻은 아내를 자신의 목숨을 부지하려고 동생이라고 속여 빼앗기기도 한다. 식탐 때문에 아들들의 장자권 다툼에 휘말려 큰 고초를 겪기도 했다. 하지만 그의 인생은 아버지 아브라함이나 아들 야곱에 비해 극적이거나 드라마틱 하지도 않았다. 가늘고 길고 평범할 뿐이다. 사람들은 아브라함이나 야곱의 생애를 보기좋게 가공해서 성공하는 인생이나 쟁취하는 인생의 본보기로 삼는다. 아브라함처럼 자신이 안정감을 누리던 모든 것들로 부터 떠나서 하나님께 순종하면 고생 끝에 물질과 땅의 축복을 주신다고 선동한다. 야곱처럼 복은 빼앗고 쟁취해야하며 하나님과 씨름하여 이길 각오로 기도하여 하나님의 뜻을 뒤집어 엎으면 하나님이 우리의 정성에 감동하여 물질의 축복을 주신다고 선동한다. 이것은 계시의 점진성이나 구속사 전체에서 아브라함과 이삭의 역할을 전혀 이해하지 못한 오해와 인간의 인간의 성공에 대한 욕망이 만나 어우러진 성경 해석이다.(이것은 차후에 기회가 되면 따로 설명하겠다.)
어쨋든 이삭의 삶은 주목할 만한 것이 없다. 그래서 그런지 이삭의 삶을 롤 모델로 성공과 축복에 대해 선동하는 사람은 아직 보지 못했다. 간간이 아브라함에게 재물로 바쳐지면서도 말없이 순종한 순종의 모델, 그리스도의 모형으로 간간이 소개될 뿐이다. 그는 아브라함 언약의 씨로 태어났지만 그렇다고 하나님 나라의 틀을 놓을 만큼 아들을 많이 낳지도 못했다. 그 역할은 야곱이 했다. 이삭의 삶을 통해서 우리는 무엇을 볼 수 있는가?
우선 모든 사람이 주인공의 삶을 살지는 않는다는 것이다. 우리 모두는 이 세상의 중심이 되고싶어 한다. 높은 지위에 올라 존경을 받고 많은 사람을 거느리고 싶어한다. 성형수술을 하고 미니스커트를 입어 많은 사람들의 주목을 받고 싶어 한다. 그러나 그것은 우리의 생각이다. 우리는 사람들에게 사랑받고 주목받고 존경받아야 성공하고 의미있는 인생이라고 생각하지만 하나님 앞에서는 아무 의미없는 편가르기일 뿐이다. 모든 사람은 하나님의 피조물이며 각자 맡은 일이 있고 그 일을 통해서 하나님께 영광 돌릴 뿐이다.
많은 자기계발 강사들은 '네가 하고싶은 일을 해라 고생하다보면 너에게도 기회가 온다.' 라고 위로하고 선동한다. 하지만 모든 사람에게 정말 성공의 기회가 찾아오는가? 그리고 그 기회를 잡아 성공에 이르는가? 그 성공의 기준은 무엇인가?
많은 직장인들이 지루한 일상에서 의미를 찾지 못해 힘겹게 하루하루를 살아낸다. '내가 이런일 하려고 태어난건 아닐꺼야!' '하나님이 얼마나 라를 사랑하시는데?' '곧 나에게도 좋은 일이 있을 꺼야...' '모든 걸 내려놓으면 하나님이 더 큰걸로 채워주시겠지?' 혼자서 북치고 장구친다.
힘들 때 이런 생각들을 하다보면 위로가 된다. 그러나 십년이 지나도 이십년이 지나도 이런일만 하고 있다면 기분이 어떨까?
막말로 30년을 꾹꾹 참으며 기도해도 삶이 스펙타클 하지도 않고 지루하기만 하다면... 내가 꿈꾸던 성공에 이르지 못한다면 어쩔 것인가? 내 인생은 실패 했다고 골방에 쭈그리고 앉아 훌쩍거릴 것인가?
영화에는 주연보다 조연이 훨씬 많다. 이 세상에도 주목받는 사람보다는 묵묵히 자기가 맡은 일을 해나가는 사람들이 많다. 겉으로는 대통령이 나라를 다스리고 미국 대통령이 세계를 지배하는 것 같지만, 이 세상은 수십억 아줌마들의 가사노동으로 굴러간다. 그리고 그들은 솥뚜껑은 하나님이 운전하신다. 주목받지 않아도 실망하지 말라. 당신의 지루한 일상은 충분히 가치있는 일이며 하나님은 당신의 보잘것 없는 수고로 세상을 꾸려가신다. 당신이 들은 잔소리, 보상받지 못한 초과근무, 올해도 토해낸 연말정산, 후려쳐진 납품 단가, 비굴한 을의 계약서, 출근길에 떨어뜨린 동전 하나. 이 모든 것들이 하나님의 섭리 속에 있다. 하나님이 수많은 무의미의 티끌을 모아 세상을 꾸려가신다. 그 티끌 속에 내가 있다. 그것만으로도 우리의 인생은 충분히 영광스럽다.
by 글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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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저 바울
집도 절도 없이 떠돌이 생활을 했으며 정규직이 아닌 아르바이트로 생계를 이어갔다.
결혼은 하지 못했을 가능성이 높다. 만약 했더라도 가족과 함께 지내지 못했다.
항상 분쟁의 중심에 있었으며 대부분의 유대인들로 부터 "한 때 엘리트 였던 루저"취급을 받았다.
그렇다면 기독교인들 사이에서는 인정을 받았는가? 아니다. 툭하면 예수님 생전에 함께 있지 않았다는 이유로 사도권을 의심 받았고
죽을 때 까지 고생만 하다가 죽었다.
그의 마음은 어땠을까? 이 세상 대부분의 사람들이 인정해 주지 않는 삶
그 스스로의 고백대로 "그냥 죽어버리는게 낫지 않을까(살 소망이 끊어졌다는 고백)"생각했던 적이 얼마나 많았을까?
그러나 그에게는 사명이 있었다. 유대인과 이방인에게 유일한 구원의 길인 은혜의 복음을 전하는 것.
그는 죽을 때 까지 그 사명에 매달려 살다가 소리 없이 죽었다.
그가 중도에 선교를 포기 했다면, 그가 뿌린 복음의 씨앗이 무성한 열매를 맺지 못하는 것을 보고 눈물로 써내려 갔던
서신들이 없었다면 우리는 무엇을 어떻게 믿고 있을까?
오늘, 루저취급을 받으며 자신의인생을 쏟아부은 바울에게 감사한다.
또 생각한다.
한편으로는 그의 고귀한 삶을 존경하면서도, 당장 실직을 두려워 하고
루저가 되기를 주저하고, 주류사회에서 이탈할까봐 전전긍긍하는 나의 모습을 본다.
점점 자본주의의 개가 되어가는 나의 모습을...
이렇게 살지 말아야지 다시한번 마음먹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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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는 모른다-정이현-문학동네
정이현의 소재는 당황스럽다. 좀 과장스럽지 않나 싶기도 하고 좀 기괴하고 불편한 것이 사실이다. 베스트 셀러에 오른 소설들 중에서 대놓고 상업적이지는 않아서 좋다. 그래서 그녀의 소설이 나올때 마다 읽어보는 편이다.
그녀는 이번 장편을 통해서 가족에 대해 이야기 하고 있다. 그래, 작가가 나이도 먹었고 하니 언제까지 당돌한 소설만쓸 수는 없지않는가. 가족, 평화, 인류 머 이런 그럴싸한 주제도 좀 다루어야 하지 않겠는가. 그런데 재밋는 것은 그것이 추리소설의 형태를 취하고 있다는 것이다. 어떤 가족이 일련의 사건을 겪으면서 그들 서로가 서로를 얼마나 모르고 있는지 자신이 감추고 있는 비밀을 드러내지 않기 위해 얼마나 애쓰고 있는지를 보여주며, 아 인간이 참 별거 없는 존재구나 라는걸 보여주려는 듯 하다. 소설은 탄탄한 내용전개와 특별한 반전은 없지만 나름대로 순조로운 마무리를 하고 끝이난다. 한편의 추리소설로서는 재밋게 읽었다고 말할 수 있다. 하지만 작가가 말하려는 '가족' '관계'에 대해 묻는다면 글쌔 가족들이 서로를 잘 모른다는 것 말고는 기억이 나지 않는다. 애초에 작가는 관계에 대한 여러가지 질문에 대해 해답을 주려고 이 소설을 쓴 것같지 않다. 작가의 말에도 나와있듯이 '소설을 열심히 썻고 세상에 내놓는다. 그것이 전부다' 라고 하지 않았던가. 세상의 치부, 나의 치부를 드러나게 잘 까발려놨으니 세상을 그리고 가족을 치유하는 것은 나의 몫이 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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